오늘은 리습 공유 말고, 리습을 받은 여러분을 위한 꿀팁이다.
인터넷에서 받은 리습을 깔아 놓고도 손이 안 가는 이유는 대개 하나다. 기능이 나빠서가 아니라 명령어가 안 외워져서다. 받은 그대로 쓰면 남이 지어 놓은 약자를 머리에 욱여넣어야 한다. 리습 명령어 교체로 내가 편한 이름을 정해 두면 그 한 줄이 손에 붙는다. 도구를 더 모으는 것보다, 가진 도구의 이름을 내 것으로 만드는 쪽이 실제로 더 빨랐다.

어떤 문제였나 — 외울 게 늘수록 안 쓰게 된다
리습 하나를 받으면 명령어가 RRAR이고, 다른 건 BXE고, 또 다른 건 fv다. 전부 만든 사람 머릿속에서 나온 약자다.
내가 리습을 만들면서는 내 나름의 규칙이 있다. 그래서 이건 만든 사람한텐 당연한 글자지만, 받는 사람한텐 의미 없는 알파벳 뭉치일 뿐이다.
도구가 다섯 개, 열 개로 쌓이면 이 약자들을 전부 외워야 한다. 그런데 사람 기억은 그렇게 너그럽지 않아서, 정작 기능은 좋은데 이름이 안 떠올라 결국 안 쓰게 되는 일이 생긴다. 도구가 늘수록 외울 게 늘고, 외울 게 늘면 쓰지 않게 되는 역설. 받은 리습이 폴더에서 잠자는 건 대개 이 지점에서다.
해법은 단순하다. 명령어를 만든 사람 기준이 아니라 내 기준으로 바꾸면 된다.
어떻게 풀었나 — 리습 명령어 바꾸기, 세 가지 방법
방법 1 — c: 뒤를 직접 고친다
리습 파일을 메모장으로 열면 파일 초반 어딘가에 이런 줄이 있다.
(defun c:RRAR ( / ... )
c: 바로 뒤가 캐드에서 부르는 명령어 이름이다. 이 RRAR을 내가 부르고 싶은 이름으로 바꾸고 저장하면 끝이다. 가령 출력 계열을 전부 P로 시작하게 묶고 싶다면 c:P2 식으로 바꾼다.
가장 직접적이지만 단점이 하나 있다. 원본 파일을 건드리는 방식이라, 나중에 만든 사람이 도구를 업데이트해 새 파일을 받으면 그 자리를 또 고쳐야 한다.
방법 2 — 원본은 그대로 두고 별칭 한 줄 (추천)
원본을 건드리지 않고 별명만 붙이는 방법이다. 내 별칭 파일 하나(예: myalias.lsp)를 만들어 두고 거기에 이렇게 한 줄을 적는다.
(defun c:pp () (c:RRAR))
이제 pp만 치면 원래 RRAR이 실행된다. 원본은 손도 안 댔으니 도구가 업데이트돼도 그냥 원본만 갈아 끼우면 그만이고, 내 별칭들은 이 파일 한 곳에 그대로 살아남는다.
이 방식의 진짜 이점은 이사다. 내가 만든 별칭을 한 파일에 모아 두면, 새 PC로 옮기거나 회사 컴퓨터에 깔 때 이 파일 하나만 들고 가면 손에 익은 명령어가 통째로 따라온다. 별칭 파일을 자동 로드 폴더에 넣어 두면 도면을 열 때마다 알아서 적용되니, 한 번 정해 두고 잊으면 된다. (리습을 처음 불러오는 방법부터 짚고 싶다면 리습 불러오기 네 가지 글을, 매번 자동으로 물리는 법은 acaddoc 상시 자동 로드 글을 참고하면 된다.)
방법 3 — 두세 글자 단축키 (ALIASEDIT · PGP)
캐드에는 자체 단축키 시스템이 따로 있다. L이 LINE이고 C가 CIRCLE인 그 체계다. 명령창에 ALIASEDIT를 입력하거나 메뉴에서 도구 → 사용자화 → 명령 별칭 편집기를 열면 단축키를 추가·수정할 수 있다.
직접 파일을 만지는 게 편하면 zwcad.pgp를 열어 단축키,*명령어 형식으로 한 줄 적고 저장한 뒤 명령창에 REINIT을 치면 재시작 없이 바로 반영된다.
단축키 편집기는 두세 글자로 줄이는 데는 최고지만, 원래 캐드 네이티브 명령을 줄이는 쪽에 잘 맞는다. 리습 명령에 짧은 키를 붙이고 싶다면 방법 2의 별칭을 짧은 이름으로 만들어 두는 쪽이 가장 확실하다. 결국 핵심은 방법 2다. 방법 3은 “이왕이면 한두 글자까지 줄이고 싶다”는 사람을 위한 보너스다.
어떻게 달라졌나 — 외울 게 줄었다
바꾸고 나니 외울 양 자체가 줄었다. 도구마다 제각각이던 약자를 내 머릿속 한 가지 규칙으로 통일했기 때문이다. 출력 계열은 무엇이든 P로 시작하고, 선택 계열은 S로 시작하는 식으로 묶으니, 새 도구를 받아도 “이건 선택이니까 S로 별칭 걸자”가 되어 따로 외울 게 거의 없다.
여기에 한 겹 더 얹은 규칙이 있다. 별칭을 정할 때 의미만 따지지 않고, 왼손만으로 칠 수 있는 키로 최대한 몰아 둔다. 키보드 왼쪽 구역(대략 Q·W·E·R·T, A·S·D·F·G, Z·X·C·V 언저리)으로 별칭을 짜면, 오른손은 마우스를 거의 놓지 않은 채 왼손으로만 명령을 던질 수 있다. 마우스에서 손을 뗐다가 키보드로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그 짧은 왕복이 하루치로 쌓이면 의외로 큰데, 그 왕복 자체를 없애는 셈이다. 손버릇은 사람마다 다르니, 참고할 사람은 참고하면 된다.
이름이 손에 붙으니 비로소 도구를 실제로 쓰게 됐다. 좋은 도구를 폴더에 재워 두는 가장 흔한 이유가 결국 이름이었던 셈이다.
사용 환경
- ZWCAD 2023 기준으로 정리했다.
(defun c: ...)문법과 별칭 래퍼는 AutoLISP 표준이라 캐드 전반에서 공통으로 통한다. ALIASEDIT·REINIT·zwcad.pgp는 ZWCAD 메뉴·파일명 기준 표기다.- AutoCAD 호환은 별도로 검증하지 않았다. 그런데 될 걸?
아직 안 되는 것 / 주의할 점
- 한글 명령어도 정의는 되지만 한·영 전환이 끼어들어 오히려 느려진다. 빠르게 칠 수 있는 영문 약자를 권한다.
- 이미 존재하는 명령·별칭과 같은 이름을 쓰면 덮어쓰기 충돌이 난다. 새 이름은 안 겹치게 정한다.
- 방법 1(원본 직접 수정)은 도구를 업데이트할 때마다 그 자리를 다시 손봐야 한다. 그래서 방법 2를 기본으로 둔다.
짧은 회고
한동안은 도구를 더 만드는 데만 마음이 쏠려 있었다. 그런데 막상 생산성을 끌어올린 건 새 도구가 아니라, 이미 가진 도구의 이름을 내 손에 맞춘 일이었다. 남이 정해 준 약자를 외우는 시간과, 내 규칙으로 바꿔 손에 붙이는 시간. 둘은 생각보다 큰 차이로 갈렸다.
예시로 든 코드 조각은 자유롭게 가져다 써도 된다. (이 블로그가 왜 리습을 공유하는지는 여기에 적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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