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10 다윗이 거느리는 용사들의 우두머리들은 이렇습니다. 이 사람들은 온 이스라엘과 함께 다윗을 도와 나라를 얻게 하고 다윗이 왕이 돼서 왕의 힘이 온 땅에 미치도록 도와주었는데 여호와께서 약속하신 대로 이루어졌습니다.
11 다윗의 용사들은 이러합니다. 학몬 사람의 아들 야소브암은 30명의 우두머리였는데 그는 창을 들어 300명을 단번에 죽였습니다.
12 그다음으로는 아호아 사람 도도의 아들 엘르아살인데 그는 세 용사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13 엘르아살은 블레셋 사람들이 싸우려고 바스담밈에 모였을 때 다윗과 함께 있었습니다. 보리가 가득한 밭이 있었는데 이스라엘 군사들은 블레셋 사람들에게서 도망쳤지만
14 그는 보리밭 한가운데 굳게 서서 밭을 지키며 블레셋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 큰 승리를 가져다주셨습니다.
15 블레셋 무리가 르바임 골짜기에 진을 치고 있을 때 30명의 우두머리 가운데 세 사람이 아둘람 동굴에 있는 다윗에게 내려왔습니다.
16 그때 다윗은 요새 가운데 있었고 블레셋 군대는 베들레헴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17 다윗이 간절하게 말했습니다. “아, 누가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 주었으면 좋겠다!”
18 이 말을 듣고 그 세 용사가 블레셋 군사들을 뚫고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에서 물을 떠서 다윗에게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세 용사가 가져온 물을 기꺼이 마시지 않고 여호와께 부어 드렸습니다.
19 다윗이 말했습니다. “하나님이여, 저는 이 물을 마시지 못하겠습니다! 자기 목숨을 걸고 갔다 온 이 사람들의 피를 제가 어떻게 마실 수 있겠습니까?” 그들이 물을 길어 오려고 목숨을 걸었기에 다윗은 마실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세 용사들이 한 일이었습니다.
(역대상 11:10~19, 우리말 성경)
[묵상]
19 다윗이 말했습니다. “하나님이여, 저는 이 물을 마시지 못하겠습니다! 자기 목숨을 걸고 갔다 온 이 사람들의 피를 제가 어떻게 마실 수 있겠습니까?” 그들이 물을 길어 오려고 목숨을 걸었기에 다윗은 마실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세 용사들이 한 일이었습니다.
(역대상 11:19, 우리말 성경)
⮑ 역대상은 일종의 역사책이다.
사기에는 모든 내용을 적을 수 없기 때문에
아주 ‘주요한 내용‘만을 적는다.
그래서 역대상에 적힌 내용은 성경이어서가 아니라,
실제로 필자가 독자들에게 반드시 전하고 싶은 이야기만을 적은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세 용사 이야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였을 것이다.
왜?
17 다윗이 간절하게 말했습니다. “아, 누가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 주었으면 좋겠다!”
18 이 말을 듣고 그 세 용사가 블레셋 군사들을 뚫고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에서 물을 떠서 다윗에게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세 용사가 가져온 물을 기꺼이 마시지 않고 여호와께 부어 드렸습니다.
19 다윗이 말했습니다. “하나님이여, 저는 이 물을 마시지 못하겠습니다! 자기 목숨을 걸고 갔다 온 이 사람들의 피를 제가 어떻게 마실 수 있겠습니까?” 그들이 물을 길어 오려고 목숨을 걸었기에 다윗은 마실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세 용사들이 한 일이었습니다.
(역대상 11:17~19, 우리말 성경)
⮑ 역사책은 보통 누군가(=인간)의 공헌을 소명하고, 정당성을 부여하고, 강조하고, 후대에 세계관 교육을 하기 위해 쓰인다. 보통은 군주의 치적을 드러내기 위해 쓰이는 경우가 많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 이야기는 다윗의 하나님을 향한 신실한 마음과 충성됨, 또 부하직원들의 생명을 진정으로 아끼는 마음을 드러내는 설화처럼 보인다.
그러나 세 부하의 모습을 먼저 보자. 그리고 역대상 전반의 관점으로 돌아가보자.
세 부하는 자기의 생명을 아끼지 않고 자신의 주군, 말하자면 자기 상사에게 충성했다.
그들의 진의가 어땠는지는 하나님만이 아시겠지만,
그들이 자기 목숨보다 상사의 염원을 더 이루고자 했던 것도 사실이고,
말하자면 죽기까지 충성했던 것이 사실이다.
오늘날, 내가 누구에게 충성하는지 생각해본다.
나는 사람에게 내 마음을 잘 안주는 것 같다.
물론 존경할만한 분들이 있고 실제로 그분들을 존경한다.
그러나 언제나 사람이 실수할 수 있고 결함투성이인 존재임을 인정하는 한
그에게 마음을 다하여 충성하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나 자신에게도 충성하기가 어렵고,
결함과 흠결이 없으신 하나님께만 충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만 그런 것 같진 않고,
요즘 많은 사람들이 충성할만한 사람 찾기 어려워하는 것 같다.
왜냐하면 마음을 다했다가 그 사람이 나를 실망시키거나 어떤 식으로든 배신당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닌 사랑할 대상이라는 말을 이따금씩 우스갯소리처럼 하기도 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세 부하의 모습은 오늘의 우리와 너무나 다르다.
우리는 우리의 상사에게 우리의 목숨을 다해서 충성할 수 있을까?
우리는 우리의 순장에게 우리의 목숨을 다해서 충성할 수 있을까?
우리가 사회의 각 처에서 만나는 우리의 리더들에게 우리의 마음을 다해 충성할 수 있을까?
아니, 내 마음을 다하는 건 고사하고, 그냥 우리가 부을 수 있는 최선을 부을 수 있을까?
어떻게 보면 전제가 틀렸을 수도 있다.
‘저 이가 나를 배신할지도 몰라, 저 사람에게 충성하지 말아야지’ 라는 전제.
상처를 입는 게 두렵지 않고 아프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그 너머에서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나는 안다.
예수님은 상처를 ‘그까짓’으로 여기시고 배신당할 것을 뻔히 아시면서 우리를 안아주셨다.
그렇게 생각하면, 사람에게 충성하는 것이 사람을 위한 일이긴 하지만 또 사람을 향한 일이 아니기도 하다.
그러니까, 이자의 권위, 나보다 상급자가 된 이 자의 권위가 어디로부터 나오는지를 기억하면 해결책이 있다.
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 복종하십시오. 무슨 권세든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않은 것이 없고 이미 있는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입니다.
(로마서 13:1, 우리말 성경)
⮑ 그러니까 말하자면 그들은 자기를 세운 권위에 복종함으로써 그 권위를 세운 하나님께 순종한 것이다.
복음이 우리에게 순종을 만들어낸다는 점을 생각했을 때, 그들은 이미 복음을 아는 지혜자였던 셈이다.
역대상이 쓰인 관점으로 돌아가보자.
족보를 통해 그 문을 연 역대상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너희의 주인이시고 하나님의 약속이 너희 가운데 끊어지지 않았음‘을 백성들에게 주지시키기 위해 쓰였다.
다윗은 물론 이스라엘의 주요 인물이었다. 그러나 세 용사 이야기가 시사하는 바는 다윗 한 사람보다 크다.
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한 분인 여호와이시다.
5 너는 네 온 마음을 다하고 영혼을 다하고 힘을 다해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라.
(신명기 6:4~5, 우리말 성경)
⮑ 하나님이 그들의 삶에서 얼마나 충성할 만한 분인지
내 감정과 상관없이 권세자들에게 마음을 다하는 것이 하나님께 얼마나 영광을 돌려드리는 일인지
그리고 더불어, 리더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팔로워들을 얼마나 긍휼히 여겨야 하는지
이 한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의 관점을 모두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누군가의 팔로워인 경우가 우리에게는 더 많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모든 메시지에는 수신자가 있다. 당신이 이 이야기를 읽고 다윗과 같은 리더를 원해도, 당신의 리더는 하나님으로 인하지 않고는 바뀔 수 없다, 오히려 당신이 아비새, 엘르아살, 야소브암 같은 사람이 되는 게 하나님이 당신에게 보내는 메시지다_그리고 나에게도)
[기도]
하나님, 내게 보내신 리더들이 많이 있습니다.
나는 리더에게 어떻게 행동했었는지 반성하게 됩니다.
그러나 리더에게 내 마음을 다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내 리더로 부름받은 분들을 내 마음대로 판단했습니다.
그에게 덕목이 있는지 살폈고, 덕목이 없으면 그를 마음으로 거절했습니다.
그게 하나님을 거절하는 행동인줄도 모르고 그렇게 행동했습니다.
성령님, 당신이 내게 보내주신 리더를 거절함으로써
하나님의 권세를 거절하고, 그로부터 나오는 힘을 손상시켰음을 회개합니다.
하나님만이 충성할 대상이고,
불완전한 사람들에게 충성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지녔음을 회개합니다.
주님, 내가 이제 아오니, 내 잘못된 지식을 바꿔주시고
나를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에 충성할 수 있도록 훈련시켜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적용]
- 수련회에 가는 길이다. 수련회에도 물론 내 리더가 있다. 리더의 권위에 순종하기. 아끼지 않고 헌신하기. 아끼다가 인생 다 간다.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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