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105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불이요, 내 길의 빛입니다.
106 내가 주의 의로운 법을 따르기로 맹세했으니 그렇게 할 것입니다.
107 내가 많은 고난을 당했습니다. 오 여호와여, 주의 약속대로 나를 되살리소서.
108 간구하건데 내 입의 낙헌제를 받으시고 오 여호와여, 주의 법을 내게 가르치소서.
109 내 영혼이 계속 내 손안에 있어도 내가 주의 법을 잊지 않습니다.
110 악인들이 나를 덮치려고 덫을 놓았어도 나는 주의 교훈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111 내가 주의 교훈을 영원히 내 재산으로 삼았습니다. 그것이 내 마음의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112 내가 내 마음을 주의 율례에 기울였으니 끝까지 수행할 것입니다.
113 나는 헛된 생각들을 싫어하고 주의 법을 사랑합니다.
114 주는 내 피난처이시요, 내 방패이시니 내가 주의 말씀을 바랍니다.
115 너희 악을 행하는 사람들아, 내게서 물러가라. 나는 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것이다!
116 주의 약속에 따라 나를 붙잡아 주소서. 그래야 내가 살 것입니다. 내 소망이 부끄럽지 않게 하소서.
117 나를 붙드소서. 그러면 내가 무사할 것입니다. 내가 끊임없이 주의 율례를 염두에 두겠습니다.
118 주의 율례를 떠나는 사람은 모두 주께서 짓밟으셨습니다. 그들의 속임수는 헛것이기 때문입니다.
119 이 땅의 모든 악인들은 주께서 찌꺼기처럼 버리십니다. 그러므로 나는 주의 교훈을 사랑합니다.
120 내 육체가 주를 두려워하며 벌벌 떱니다. 나는 주의 법이 두렵습니다.
(시편 119:105~120, 우리말 성경)
묵상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지닌 여러 단면을 묘사하는데, 이 중 부딪히는 것들도 여러가지가 있다.
하나님의 법은 사모할만한 것이고,
동시에 두려워하며 벌벌 떨만한 것이기도 하다.
어떤 것이 사랑스러워 그 마음에 기쁨이 됨과 동시에 두려워할만한 것이라는 사실이 쉽게 와닿지는 않지만,
우리가 대단히 경외(혹은 경애)하는 존재에 대해 생각해보면 그 느낌이 어렴풋이 비슷하다.
그래서 주의 교훈과 율례, 법칙, 계명, 혹은 하나님 그 자체는
피난처이자 방패이고, 마음의 기쁨이요 재산, 소망의 근원, 붙잡음의 근거, 잊지 말고 떠나지 말아야 할 원천인 동시에
떠나는 자에게 파멸이 찾아오고, 하나님 앞에 찌꺼기처럼(119:119) 버려진다. 그것을 떠난 자는 속임수를 구사하게 되고 그 속임수 자체가 헛되다.
나는 본문에 인과가 불분명하게 숨어있다고 생각했다.
118 주의 율례를 떠나는 사람은 모두 주께서 짓밟으셨습니다. 그들의 속임수는 헛것이기 때문입니다.
(시편 119:118, 우리말 성경)
⮑ 주의 율례를 떠나는 사람과 그들의 속임수에 대해 묵상하게 됐는데,
속임수의 주체는 ‘떠나는 사람’이다.
주의 율례를 떠나는 것(이하 ‘도피’)과 속임수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자.
도피와 속임수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도 있다.
하나님으로부터 도피를 한 자들 중, 속이는 자와 속이지 않는 자가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데 본문은 도피한 자가 반드시 속임수와 연관된 것처럼 묘사한다.
말하자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분들 가운데 ‘나는 살면서 다른 사람을 기만하거나 속인 적 없는데?’
라고 반문할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나님으로부터 떠나는 사람은 원래 하나님 안에 거했던 사람이다. (모든 영혼이 세상으로 보내질 때 하나님의 손아귀에서 출발한다는 걸 생각해보면 이는 사실상 모든 사람들이다)
그러면 이들은 왜 하나님으로부터 떠났는가?
왜냐하면 하나님이 더 이상 그들에게 의미를 지니지 못하게 변했고
하나님보다 더 중요한 의미의 다른 것들이 그들의 삶에 부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말하자면, 이건 속임수다. 대적의 기민한 전략 중 하나로, 우리 삶의 우선순위를 교묘히 바꿔치기하는 방식이다.
대적은 우리의 삶의 행복이 더 중요하다고 속살거린다.
행복은 물론 중요하다.
그런데 대적은 그 행복을 얻는 방식의 동기를 아예 바꾸어버린다.
내가 원하는 가치를 소유하면 행복해질거라고 여러 매체를 통해 암시한다.
우리가 어릴 때부터 읽는 동화책이나 부르는 노래나 무차별적으로 수용하는 여러 통로들에서
이런 메시지를 수 없이 던진다. 그래서 우리는 진짜로 그렇다고 믿어버린다.
인간이 하나님 곁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한 것인데,
대적은 헛된 속임수로 내가 하나님의 규칙에서 떠나,
안전한 울타리에서 벗어나 바로 그 헛된 속임수를 쫓아가게 만든다.
그러면 이제 이해가 된다.
116 주의 약속에 따라 나를 붙잡아 주소서. 그래야 내가 살 것입니다. 내 소망이 부끄럽지 않게 하소서.
117 나를 붙드소서. 그러면 내가 무사할 것입니다. 내가 끊임없이 주의 율례를 염두에 두겠습니다.
(시편 119:116~117, 우리말 성경)
⮑ 하나님 앞에 계속 붙들리지 않으면, 또 하나님이 나를 붙들어주시지 않으면
내 마음의 관성은 내가 원하는 것들을 하나님보다 더 쫓게 만든다.
그리고 그것들을 달라고 하나님 앞에 떼쓰게 되고,
(왜 안 주냐고도 떼쓰게 되고)
하나님이 나를 살려주시리라는 구원의 소망보다
더 귀한 것들이 자꾸 생기게 된다.
그러다 보면 복음과 하나님의 은혜를 헌신짝처럼 멸시하게 되고 더 나아가 사람들 앞에서 복음을 부끄러워하게 된다!
4 아니면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그대를 회개로 이끄시는 것을 알지 못하고 그분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오래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합니까?
(로마서 2:4, 우리말 성경)
기도
하나님, 오늘 말씀으로 당신을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리고 말씀해주셔서 내게 한 구절을 걸리게 하시고, 대적의 속임수를 분별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내가 당신의 발 앞에서 벗어나지 않기 원합니다.
정말로 나는 예배자로 평생을 살아가고 싶습니다.
대적의 나를 움직이려는 소리가 들릴 때 내가 민첩하게 반응하도록
오늘 남은 내 시간도 당신께 드립니다.
내가 수치나 두려움을 당해도 당신을 붙잡는 게 더 중요합니다. 이것은 진리입니다.
내가 수치나 두려움을 당해도 당신 안에 있으면 다 괜찮습니다. 당신이 살려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은혜입니다.
진리를 알아 진리를 붙잡고, 진리를 붙잡음으로 은혜 속에 머무르게 도와주세요.
7 참고 선을 행해 영광과 존귀와 불멸을 추구하는 사람에게는 영생을 주시나
8 자기 이익만 추구하고 진리에 순종하지 않고 불의를 따르는 사람에게는 진노와 분노를 내리실 것입니다.
(로마서 2:7~8, 우리말 성경)
⮑ 참을 때 다른 무엇이 아니라 당신으로서 참고 넉넉히 이기게 해 주세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신의 은혜에 감사하게 해주세요.
적용
➀ 존귀 챌린지에 효과가 있다. 오늘도 하기. (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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