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1 그들은 하나님의 궤를 모셔다가 다윗이 친 장막 안에 두었고 하나님 앞에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2 다윗은 번제와 화목제를 다 드린 후 백성들을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했습니다.
3 그리고 그는 남자 여자 모두 이스라엘 백성 하나하나에게 빵 한 덩이와 고기 한 조각과 건포도 과자 하나를 나눠 주었습니다.
4 다윗은 몇몇 레위 사람을 뽑아 여호와의 궤 앞에서 섬기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하며 감사를 드리게 했습니다.
5 그 우두머리는 아삽이었고 그다음은 스가랴, 그다음은 여이엘, 스미라못, 여히엘, 맛디디아, 엘리압, 브나야, 오벧에돔, 여이엘이었습니다. 그들은 비파와 수금을 켜고 아삽은 심벌즈를 치고
6 제사장인 브나야와 야하시엘은 정해진 시간마다 하나님의 언약궤 앞에서 나팔을 불었습니다.
(역대상 16:1~6, 우리말 성경)
묵상
다윗의 시대에 이르러 예배가 회복된다.
임재하시는 하나님, 도우시는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온 회중 가운데 계시고
온 백성은 자기의 지어진 목적대로 하나님을 일생동안 찬양하며 살게 된다.
3 그리고 그는 남자 여자 모두 이스라엘 백성 하나하나에게 빵 한 덩이와 고기 한 조각과 건포도 과자 하나를 나눠 주었습니다.
(역대상 16:3, 우리말 성경)
⮑ 다윗 시대의 예배는 온 공동체가 함께 누리고 즐기는 축제였다.
작금의 예배는 어떤가?
예배는 개인의 차원에서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대화의 장이다.
그러나 공동체 차원에서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진리가 선포되는
축제의 장이다.
나눔과 기쁨과 즐거움의 장이다.
나는 예배를 즐거움보다는 좀 더
수업과 출근과 의무감으로 여기는 것 같다.
나는 학생일 때 학교에 가는 게 어느 정도는 즐거웠다 (진짜다)
꽤 어렸을 때부터 유치원 가는 걸 즐겼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의무감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의무감은 자주 ‘하기 싫음’과 연결되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가고 싶은 일, 하고 싶은 일에도 일정량의 의무감이 첨가된다.
내게 예배는 일정량의 의무감이다.
그러나 내게 의무감의 비중이 늘어나고 커지면 그건 하기 싫은 일이 되곤 한다.
지금 내게 예배는 의무감이 더 크다. 그래서 지금의 예배는 어느 정도 내게는
‘감내해야 하는 일’이 됐다.
하나님 앞에 다윗의 시대처럼 예배의 즐거움을 회복하고 싶다.
어떻게 하면 예배의 즐거움을 회복할 수 있을까.
한 가지 방법은 동역자들이다.
난 실제로 이 방법을 애용한다. 그러나 동역자들은 내 외부의 조건이기 때문에
내가 조절하거나 통제할 수 없다.
나는 내재적 방법을 이용해야 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즐거운 예배를 위한 내재적 방법에는 어떤 게 있을까.
기도
하나님, 제가 다윗을 보니까
다윗은 정말 하나님 안에 있는 걸 즐거워했던 사람입니다.
매주 하나님을 만나는 게 즐거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물론 다윗이 그랬는지는 모르지만요, 아무튼 제가 그렇게 되고 싶어요)
하나님 말씀을 상기하고, 생각하고,
당신을 만나러 예배에 가는 것이 즐거웠으면 좋겠어요.
저는 지금까지 동역자들을 자주 의지했습니다.
그러나 공동체가 달라지니까 그것도 여의치 않아요.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 관계를 맺어야 하고,
그게 서투른 저에게는 의지할 동역자들이 생기기까지
계속해서 부딪힘과 험난함의 연속입니다. 괴롭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서 언젠가 이루어주실 일임을 압니다.
그래서 그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나는 하나님 한 분 만으로 만족하는 방법을 배우고 싶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적용
- 주일 아침을 찬양으로 시작하기. 찬양을 틀면 된다.
- 이번 주에 큐티로 사랑의 하나님을 묵상할 건데,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고 정리해서 주일에 들고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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