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를 구하는 종 — 성령의 열매 ① 사랑 (26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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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 그 후에 다윗은 블레셋 사람들을 쳐서 굴복시켰습니다. 그는 가드와 그 주변 마을들을 블레셋에게서 빼앗았습니다.

2 다윗은 또 모압을 쳤고 모압 사람들은 다윗의 종이 돼 조공을 바치게 됐습니다.

3 또한 다윗은 유프라테스 강을 따라 지배권을 넓히려고 하는 소바 왕 하닷에셀과 싸워 하맛까지 갔습니다.

4 다윗은 1,000대의 전차와 7,000명의 기마병과 2만 명의 보병을 빼앗고 말은 전차용 말 100마리만을 남기고 나머지 말은 모두 발의 힘줄을 끊어 버렸습니다.

5 다메섹의 아람 사람이 소바 왕 하닷에셀을 도우러 오자 다윗은 아람 사람 2만 2,000명을 죽였습니다.

6 다윗은 다메섹의 아람에 군대를 두었고 아람 사람은 그에게 굴복해 조공을 바쳤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다윗이 가는 곳마다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7 다윗은 하닷에셀의 부하들이 가져온 금 방패들을 빼앗아 예루살렘으로 가져왔습니다.

8 또 다윗은 하닷에셀의 성들인 디브핫과 군에서 많은 양의 청동을 가져왔으며 솔로몬은 그것으로 청동 바다와 기둥과 여러 가지 청동그릇들을 만들었습니다.

(역대상 18:1~8, 우리말 성경)

묵상

다윗은 전쟁에서 승리한다.
전쟁 승리의 노획물은 이후 성전에 드리는 예물이 된다.

승리하는 다윗,
다윗은 자기에게 도전하는 자들에게도 승리하고
또 나아가서 굴복시키기도 한다.

내 삶에는 늘 전쟁과 싸움이 있다.
하나님이 다윗과 함께하시니

6 다윗은 다메섹의 아람에 군대를 두었고 아람 사람은 그에게 굴복해 조공을 바쳤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다윗이 가는 곳마다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역대상 18:6, 우리말 성경)

그러나 이는 다윗의 승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게 하신 승리다. 즉 하나님의 승리다.

하나님 내가 가는 곳마다 승리하게 하소서.

최근 책을 읽고 있다. 책을 요즘 많이 읽는다.
오늘 읽은 책은 ‘제자입니까’라는 책이다. – 좋은 책이다. 읽으시기를 권함.
나는 진짜 제자라고 할 수 있을까.

하나님 내가 가는 곳마다 승리하게 하소서.
⮑ 내가 위에서 이렇게 기도했다.
나는 승리를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고 있다.
내 삶에서의 승리, 즉 내 삶에서 좋은 것들 있지 않은가?
윤택하고 안락한 삶! 풍부한 물질! 기부도 할 수 있다면 더 좋다.
존경받는 인간관계, 친애하는 친구들로부터 받는 경애,
안정적인 직장(보장되는 밥벌이), 적당히 예수를 전하는 삶 – 내가 적당히라고 써서 좀 부정적 뉘앙스를 강조했으나 이것도 쉬운 건 아님을 안다.

아, 이런 것들, 얼마나 좋아 보이는가?
그래서 하나님, 이런 것들 주소서. 이런 것들이 있으면 내가 승리한 줄 알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은가.

제자입니까, 에는 많은 내용이 나오지만,
그중 무익한 종에 대한 내용이 있다.

7 너희 중 한 명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종이 있다고 하자. 그 종이 들에서 일하고 돌아오면 그에게 ‘들어와 앉아 먹어라’라고 하겠느냐?

8 오히려 ‘내 저녁을 준비하고 허리에 띠를 두르고 내가 다 먹고 마실 동안 내 시중을 들어라. 그러고 나서 너도 먹고 마셔라’라고 하지 않겠느냐?

9 자기가 말한 대로 종이 했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맙다고 하겠느냐?

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대로 다 마치고 나서 ‘우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그저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누가복음 17:7~10, 우리말 성경)

⮑ 아, 정말 비참한 것은, 나는 종이지만 주님께 ‘주님, 제 생각에는 이게 좋겠습니다’ 한다는 것이다. 민주사회를 사는 우리는 누군가 우리에게 명령하는 것을 견딜 수 없어한다. 설령 그게 하나님이라 할지라도. 그러나 우리는 모두에게 명령하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명분을 잡으려고 한다.
⮑ 내가 할 것을 다 해도 나는 무익한 종이다, 얘기할 수 있어야 하는데,

여전히 나는 주님께 이것저것 달라고 한다.
인스타에서 ‘실망하지 않는다면 구해도 좋다’라는 글귀를 봤다.
자세하게 읽지 않아서 요지는 알 수 없지만, 피상적인 내용으로만 본다면
내 감정, 즉 실망이라는 결과만 다스릴 수 있다면 하나님 앞에 얼마든지 간구해도 좋다는 얘기다.

간구는 악한 것이 아니다. 간구는 필요하다. 어떨 때는.
그러나 이게 늘 간구만 하는 내 기도를 절대로 합리화해주지 않는다.
그러니까 주님 내 필요를 다 채워주고 도깨비방망이처럼 해주십시오! 그 말을 정당화해주지 않는단 말이다.
만약에 하나님이 아무것도 주지 않으시겠다고 내게 선언하신다면 실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난 무조건 실망한다. 그것도 대단히 실망한다. 교회를 안 가진 않을 것이다. 가겠지만, 주님께 화가 날 것이다.
그런데 종이 주인에게 화낼 수 있는가? 아니, 분노를 표출하는 것 말고! 그 감정 자체를 분노를 품을 수 있는가? ‘아니, 그것도 못한단 말이야?’ 그렇게 생각하는가? ‘내 감정의 주인은 나잖아! 나는 내 감정을 선택할 수 있다구.’ 정말 그런가?

아니, 종은 그냥 주인이 새벽에 일어나라고 하면 일어날 뿐이다.
그게 내가 죽고 예수로 사는 거다. 내 자아를 죽인다는 건 그런 거다.
내가 뭘 원하든, 주님이 그걸 바라시면 그걸 하는 거다.

누군가가 나에게 뭘 하라고 하면 그걸 그 사람이 그걸 원하는 만큼 기꺼이 해줄 수 있나?
나는 못한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한테 그렇게 하셨다.
다윗이 승리해야 하는 순간마다 하나님은 승리를 주셨다. 그 승리는 곧 당신의 승리였다.
다윗은 하나님께 물었을 것이다. 하나님이 나가라고 하셨을 것이다. 다윗은 순종했다.
그러니까 다윗이 전쟁을 하고 싶지 않았더라도 다윗은 그냥 전쟁을 했다. 그러면 하나님이 승리를 주셨다. 성경에는 승리가 기록되어 있지만, 다윗은 자기 마음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거다.

내 자아를 본다. 얼마나 단단하고 굳세고 윤이 나는지 모른다. 내 자아가 내 마음의 바닥에 깊이 박혀있는 모습을 보노라니 ‘와,, 저게 빠질 수 있을까?’ ‘저게 뽑힐 수 있을까?’ 이런 생각만 든다.
나는 쉬고 싶고 눕고 싶고 자고 싶다. 안 하고 싶다. 하기 싫다. 순종도, 예배도, 사랑도 안 할 수만 있다면 안 하고 싶다. 인내도 안 하고 싶다. 그냥 내 감정에 좋은 것들만 하고 싶다. 그것들이 나를 아프고 고통스럽게 한다. 당장 이 하나님의 말씀도, 얼마나 불쾌한가? 나는 고생을 엄청 하는데 알아주시지도 않고, ‘저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하라니! 세상에나!

좌절스럽고, 절망스럽다.
남들보다 신앙 좋은 체했던 모습이 수치스럽다.
내 자아가 괜찮은 것 같고 선한 것 같았는데 하나님은 ‘너는 무익한 종이라’ 하신다.
아니, 무익한 종도 못 된다. 무익한 종은 할 걸 다 했다. 나는 할 것도 안 하고 ‘주님, 당신을 따라 살겠습니다’ 한다.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다.

그냥 사랑하면 된다. 사랑할 마음을 구할 필요 없다. 그냥 사랑하면 된다.
성경의 인물들은 다 그냥 그렇게 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누워서 사랑할 마음을 주십시오. 기도한 사람, 생각 안 난다. 내가 알기로 없다.

기도

하나님, 사랑하겠습니다.
제가 다윗의 승리와 순종을 보니까
하나님이 책으로 제게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저는 진짜 말도 안 되게 살았습니다.
제가 선하고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이 분명히
‘하늘에 계신 아버지 이외에 선한 분이 없다’라고 하셨는데
끊기지 않고 연속으로 QT 며칠 했다고 제 자아가 건강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랑할 기회마다, ‘주님, 사랑할 마음을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거죠. 순종할 기회마다 ‘주님, 순종할 마음을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하는 거죠.
제가 누워있으면서 주님이 입에다 떠먹여주길 바라는 안일하고 나태한 마음이 있습니다.

감사하고 사랑하고 결단하고 행동하라는 내용의 책을 지하철에서 읽으면서
옆에 사람이 나를 치고 지나가면 불같은 분노가 이는 제 마음을 불쌍히 여겨주소서.
누가 이 사망의 권세에서 나를 구해내겠습니까? 오직 예수님만이 가능하십니다.
나는 나 스스로를 구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기로 결단합니다.
이 모든 말씀, 기도를 들어주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적용

  1. 내일도 큐티하기
  2.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떤 행동을 해야 내가 ‘사랑했다’라고 여길까? 나는 이제껏 내 어떤 행동들을 ‘사랑’이라고 여겼다. 진짜? 정말로? 의심해본다. 그거 내가 사랑으로 했을까? 아니면 그게 내 영혼의 고결함을 지키고 오물이 흰 옷에 묻지 않는 방식이라고 생각해서 한 걸까? 주님은 아신다. 그리고 사실, 놀랍게도 나도 안다. 정신 차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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