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도구로 되겠다 — 그 눈이 뜨이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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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캐드 반복 작업 하나를 몇 년 동안 손으로 했다. 반복인 건 알았다. 다만 코딩을 모르니, 다른 방법이 있다는 생각을 못 했다.

캐드로 도면을 그리다 보면 이런 상황이 온다. 나란히 그은 두 선이 있다.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선이 잔뜩 있다. 나는 그 사이 구간만 깨끗이 지우고 싶다.

손으로 하면 방법은 하나다. 가로지르는 선을 하나씩 집는다. 양쪽 경계에서 두 번 자른다. 다음 선으로 넘어간다. 또 두 번 자른다.

선이 서른 개면 예순 번을 자른다. 백 개면 이백 번이다.

나는 이걸 몇 년을 했다. 지겹다고 생각한 적은 있어도 “이건 자동으로 되겠다”고 생각할 수는 없었다. 코딩을 모르니까.

자동화 도구 생성하는 나, 멋지당!

캐드 반복 작업, 알면서도 그냥 했다

반복인 건 알았다. 서른 개짜리 선을 예순 번 자르면서 그걸 모르면 이상한거지.

그런데 아는 것과 없앨 수 있다고 믿는 건 다른 얘기다.

나는 코딩을 못 했다. 그러니 “이걸 자동으로 하면 되잖아” 같은 생각이 애초에 안 떠올랐다. 자동으로 하는 건 리습을 짤 수 있는 프로그래머나 하는 거였다. 나 같은 사람 몫이 아니었다.

그래서 반복인 줄 알면서도 그냥 했다. 이건 원래 이런 일이려니 했다. 손으로 하는 게 당연한 일 목록에 넣어두고 몇 년을 넘겼다.

그렇게 몇 년, 실력이 늘긴 했다. 손 빠르기. 번개같은 손가락 운동.

선을 집고 자르는 속도는 빨라졌다. 나는 그 일을 더 빨리 하는 사람이 됐다. 딱 거기까지였다. 더 빨리 반복하게 됐을 뿐, 반복을 없앨 생각은 안 했다. 돌파구를 낼 생각 자체를 안 했다. 감옥을 벗어나겠다는 생각은 못하고, 감옥 안을 더 빠르게 질주하는 자가 됐다.

자동화의 시작은 “이게 반복이네”가 아니었다. 그건 진작 알았다. 진짜 시작은 “이 반복, 나도 없앨 수 있겠는데”였다. 그 생각이 드는 데 몇 년이 걸렸다.

“이건 도구다” 싶은 신호

그 작업을 도구로 만들었다. 이름은 TRA다. 두 선을 찍으면 그 사이를 한 번에 정리한다.

만들고 나서 알았다. 이건 도구가 되기 딱 좋은 작업이었다는 걸.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첫째, 규칙이 딱 떨어진다. “두 선 사이는 비운다.” 끝이다. 여기엔 애매함이 없다.

둘째, 예외가 거의 없다. 어떤 도면이든 “사이를 비운다”는 규칙은 똑같이 맞았다. 이 도면은 이렇고 저 도면은 저렇고가 없었다.

셋째, 결과가 예측된다. 실행하기 전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내가 안다. 놀랄 일이 없다.

이 세 개가 다 맞으면 그건 도구로 될 작업이다. 손이 기계처럼 같은 동작을 반복하고 있고. 그 규칙을 말로 설명할 수 있고. 결과가 뻔하고.

지금은 도면을 그리다 손이 반복에 들어가면 안다. “아, 이거 도구로 되겠다.” 예전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 자리다.

그런데 다 그런 건 아니었다

TRA를 만들면서 짝이 되는 도구도 만들었다. TRB다.

TRA가 두 선 “사이”를 지운다면, TRB는 두 선 “바깥”을 정리한다. 같은 엔진이다. 겨냥하는 자리만 반대다.

만들 때는 똑같은 줄 알았다. 그런데 쓰다 보니 결이 달랐다.

“사이를 비운다”는 규칙은 안 흔들린다. 그런데 “바깥을 어디까지 정리하나”는 도면마다 달랐다. 바깥으로 삐져나온 꼬리를 다 지우는 게 늘 맞는 건 아니었다. 어떤 건 남겨야 했다. 어떤 건 조금만 잘라야 했다.

그래서 TRB는 만들어 놓고도 TRA만큼 맘 놓고 못 쓴다. 실행 전에 눈으로 한 번 더 본다. “이건 다 잘라도 되나?” 판단이 낀다.

이게 중요한 지점이다. 도구로 만들 수 있느냐 없느냐만 있는 게 아니다. 만들었어도 사람이 여전히 봐야 하는 작업이 있다.

규칙이 딱 떨어지면 손을 떼도 된다. 판단이 끼면 손을 못 뗀다. 자동화가 할 수 있는 건 반복이지 판단이 아니다.

짧은 회고

눈이 뜨이면 일이 다르게 보인다.

예전엔 도면을 그리며 그냥 손을 움직였다. 지금은 손이 움직이는 걸 한 발 떨어져서 본다. “이 동작 지금 몇 번째지?” “이거 규칙이 있나?” “결과가 뻔한가?”

그렇다고 다 도구로 만들지는 않는다. 판단이 끼는 일은 그냥 손으로 한다. 그게 더 빠르고 안전하니까.

자동화는 손을 없애는 일이 아니었다. 손을 뗄 자리와 손을 둘 자리를 나누는 일이었다. 그 눈이 생기는 것. 도구를 만드는 것보다 그게 먼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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